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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이 기업인 비판할 수 있나

큰산happypapa 2011. 8. 9. 08:39

[시론] 정치인들이 기업인 비판할 수 있나

건설경제 20110809A23

 

진형준 홍익대 불문과 교수

 1995년 여름, 우리 가족은 안식년을 이용해 프랑스 파리 근교에 살고 있었다. 그때 우리 집 거실에는 자그마한 삼성 텔레비전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애국자여서 산 것이 아니었다. 이유는 값이 제일 쌌기 때문이었다. 삼성, 대우, 금성 등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들은 그곳의 거대한 가전제품 판매장의 한구석에, 가장 싼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외국에서 한국 제품을 만날 수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은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런 시절 프랑스 텔레비전 퀴즈 프로의 특별 상품으로 대우 에스페로 자동차가 스튜디오 한복판에 버젓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대견해했고 반가워했던가!

 그런데 현대자동차가 미국 대형차 시장에서 소비자 만족도 1위에 올랐다. 그 후 20여년이 지난 2011년 여름 한 신문기사 내용이다. 20여년 전 외국 매장 한구석에 있던 삼성, LG 등의 가전제품들은 이제 모두가 선망하는 최고급 제품이 되었다. 경천동지할 변화다.

 선진국의 기술을 열심히 습득해 그 뒤를 쫓아온 결과 이제는 패스트 팔로워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가 되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양적 성장을 이뤘으니 우리 모두 질적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공익 광고에서 흘러나오는 차별의 마음을 버리고 편견 없는 시각을 갖자는 호소,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선점 다툼을 벌이는 동반성장과 서민 위주 정책의 구호들은 모두 그런 변화의 요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들은 모두 어느 정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논리화될 때가 더욱 문제다.

 우리의 성숙된 의식을 보여주어야 할 그런 요구들이 정치 논리 속에서는 모두 ‘성장이냐 분배냐, 보수냐 진보냐’의 양자택일의 논리로 환원되어 버린다. 성장은 차별과 착취로 이루어진 것이라 나쁜 것이고 분배는 선이 되며, 보수는 기득권 옹호이며 진보는 약자 편을 드는 정의로운 모습으로 포장된다. 그 둘이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된다.

 인간이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또한 인간 내부에는 현재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보수적 본능과 변화를 추구하는 형성적 본능이 공존하고 있다. 성장은 악이 아니다. 공자님도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보수는 없애버려야 할 장애물이 아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질적인 변화를 이룩하고 성숙을 이루는 첩경은 그런 양자택일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양자택일의 논리에는 애정이 끼어들 틈이 없다. 우리가 이룬 것과 과오에 대한 애정이 끼어들 틈이 없으며 나와 다른 생각, 다른 행동에 대한 애정이 끼어들 틈이 없다. 냉소적이 된다. 그리고 이기적이 된다. 그동안 우리가 이룩한 것, 이룩하지 못한 것, 잘한 것, 잘못한 것, 이게 모두 우리의 몫이라는 성숙한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런데 정치가 그 양자택일의 논리를 부추긴다.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정말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예를 들어보자. 여당일 때 발의한 사안을 야당이 되어서 반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반대 이유를 댄다. 구차하기 짝이 없다. 그러고는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을 한다. 그 추상적인 국민! 내용은 사라진 허상 같은 국민! 표를 얻기 위한 계산 속의 국민! 허물 없는 관계의 사람이 은밀하게 ‘전에는 찬성하지 않았냐?’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다 알면서...’라고 웃으며 대답할 것이다. 그게 정치고 현실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무슨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질문을 하고 있냐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이기는 것이 바로 정치에서의 정의라고, 정치는 그런 진정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나는 대신 대답해주고 싶다.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것은 당신이라고.

 얼마 전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자 정치권이 합심해 우리의 대기업은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있다며 성토하는 일이 있었다. 자기네들이야말로 눈앞의 이익에 몰두해 있으면서!

 대기업? 해야 할 일 많다. 변화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러나 그 변화는 자생적인 것이어야 한다. 블루오션을 주창한 김위찬 교수는 “블루오션의 혁신은 경제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과 그것이 지닌 실질적 가치와 그것이 인류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역할을 동시에 맺어줄 때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감히 말하지만 그런 공부와 고민은 정치인들보다 기업인들이 더 한다. 사고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더 고통스럽게 모색한다. 그런 기업인들에게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지 말라고 정치인들이 가르치고 비판하려 든다. 오히려 기업이 건전해지고 건강해지는 것을 방해하는 꼴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에게 ‘정치도, 이기려고만 해서는 결국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성숙한 생각이 들 수 있기 전까지는 어설프게 인도하고 가르치려 들지 말라. 제발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