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산happypapa
2010. 8. 31. 16:14
암릉 또 암릉… 임꺽정이 놀았던 그 곳!
# “악어는 잘 있지요?”
양주 불곡산(佛谷山·465m)의 임꺽정봉(450m)과 연결되는 원심이골 좌측 암릉지대를 둘러보고 올라가는 길에 마주 오던 50대 등반객이 알은체를 하며 물어온다.
“예…?”
동행했던 C씨는 “아우는 잘 있나”로 잘못 듣고 ‘면식이 있는 형님인가?’하고 다시 바라본다. 하지만 씩∼ 웃는 등반객을 보고 금세 알아들었다.
“예, 악어 잘 있습니다. 히히….”
안부를 물어 온 악어바위는 잘 있었다. 선명한 악어가죽 문양에다 생김새도 마치 기어오르는 악어 모양으로 바위에 붙어있다. 불곡산을 찾는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바위다. 그래서 지도에는 이름이 없는 이 능선을 등반객들은 악어능선이라고도 부른다. 악어바위뿐 아니라 공깃돌, 코끼리바위, 신선대, 복주머니바위도 잘 있었다. 불곡산은 작은 덩치에 비해 산의 ‘산 맛’을 고루 즐길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산이다.
“틈을 주지 않는구먼.”
임꺽정봉에 겨우 달라붙은 한 등반객이 땀을 닦으며 한마디 한다. 암반 하나를 간신히 올랐다 싶으면 바로 다른 암반이 기다린다. 불곡산은 북한산에 비교한다면 잇대어 의상능선을 붙여놓은 듯도 한데, 그러나 의상보다는 훨씬 짜릿하다. 또 한 고비를 넘을 때마다 마치 ‘서두르지 말고 쉬어가라’는 듯 절묘한 전망터가 있어 사방을 둘러보며 땀을 식히게 만든다. “고것 참… 지루할 틈을 주지 않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임꺽정봉에서 상투봉을 향해 내려오다가 이정표 부근에 좀 익살맞은 안내판이 서 있다.
“…어린이나 노약자 등 심신이 불편한 이용객들의 등반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불곡산은, 연애 중인 사람들이라면 짝을 지어 오는 게 좋다고 한다. 손을 붙들어 주어야 하는 난코스가 부지기수요, 그래서 남성이라면 은근히 담력을 자랑하거나, 여성이라면 한껏 내숭을 떨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불곡산이 “도봉산의 웅장한 암봉과 암릉을 빚기 전에 ‘샘플링’해서 시험가동해본 산”이라는 기발한 표현을 썼다. 불곡산은 한북정맥이 도봉산으로 연결되기 직전 경기 양주시 유양동에 솟아있는 암봉이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한 것이다.
# “대교아파트 코스로 들어가야 진짜인겨.”
지난 주말 불곡산을 찾기 위해 1호선 전철 양주역에서 내려 길건너 버스정류장에서 32번 버스를 탔다(이 버스는 카드가 되지 않으니 현찰을 준비해야 한다). 32번 버스는 불곡산의 대표적 들입목인 양주시청 뒤, 백화암 입구, 백석대교아파트 건너를 차례로 지나간다. 버스에 탄 등반객들이 들입목 앞을 지날 때마다 내려야 하느니 마느니 말들이 많자 운전기사가 사투리를 섞어가며 넌지시 일러준다.
“대교아파트 코스로 가야 능선을 오르자마자 암릉을 만나 재미있고, 백화암이나 시청 쪽으로 편하게 하산할 수 있당게.”
버스기사의 말대로 대교아파트 코스를 들입목으로, 백화암이나 시청 쪽을 날머리로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것 같다. 이 코스는 불곡산을 안내한 책자를 보면 잘 소개돼 있지 않다. 예전에는 승용차를 이용하는 등산객들이 원점회귀에 좋은 백화암이나 그 너머인 샘내정류소 코스를 주로 이용한 듯하다.
대교아파트에서 버스를 내리면 두 개의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먼저, 내리자마자 10m쯤 더 가서 만나는 들머리는 지도상으로 임꺽정봉을 왼쪽에서 공략하는 코스다. 다른 코스는 대교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려 한 100여m를 되돌아가 공장지대 뒤쪽으로 해서 악어능선으로 바로 치고 올라가는 암릉코스다. 하지만 이 능선은 ‘초심자 등반 위험’ 딱지가 붙어있다. 두 코스는 각기 장단점이 있는데, 전자는 악어바위 능선의 절묘한 바위를 보기 위해선 임꺽정봉에서 잠시 거꾸로 내려왔다 다시 올라야 한다는 단점이 있고, 후자는 임꺽정봉 왼쪽의 거대한 암봉을 타는 맛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전자의 코스를 택했다.
한 30여분 올라가 능선을 만나면 바로 불곡산에서 가장 길고 가파른 직벽형 슬래브(slab)를 만난다. 30~40m는 될 듯하다. 로프가 늘어져 있어 이것을 잡고 오르거나 ‘리지 마니아’들은 그냥 오르기도 한단다. 하지만 상부의 경사, 특히 턱을 넘어서는 곳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처음에 로프를 잡고 오르면서 “보기보단 쉽네”하다가 점점 더 겁이 나고 상부에선 몸이 경직될 만큼 돌연 아찔해진다. 앞서 오르던 한 여성 등반객도 상부 가까이 갔다가 턱을 넘지 못하고 다시 엉금엉금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쉽게 보지 마시길. 우회로가 있으니 돌아가면 된다. 여기서 임꺽정봉까지 가 계속 로프를 붙들고 올라야 하는 난코스다. 이 코스는 상체운동도 충분히 시켜준다.
임꺽정봉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악어능선을 만난다. 맨 먼저 공깃돌바위를 만나고 복주머니바위까지 보고 되돌아오면 된다. 불곡산을 찾았으면 놓칠 수 없는 절경이다.
# “임꺽정이 어릴 적 놀았을 만하지?”
불곡산을 타면서 임꺽정 생각을 한다. 불곡산 백화암 계곡 아래인 양주 유양리(지금은 유양동)에는 임꺽정과 관련된 전설들이 구전으로 전해온다. 이 골짜기 주변을 청송(靑松)골로 부르기도 했다는데 그것도 임꺽정의 소굴인 ‘청석골’과 연관짓기도 한다. 백화암 입구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임꺽정 생가보존비’가 세워져 있다. 불곡산의 바위능선을 보면 그가 뛰놀았을 모습이 그려진다.
불곡산 정상 부근에는 막걸리를 파는 부부가 있다. 한잔에 2000원. 지도에도 이동매점이라고 표시됐을 정도로 오래된 것 같다. 그냥 지나지 못하고 한잔을 마시고 백화암 코스로 내려오는 길에 큰 배낭을 지고 올라오는 한 중년 남성을 만났다. 무엇인지 물었더니 “막걸리예요. 오늘 다섯번째 지고 올라가요”라는 대답이다. 정상의 이동매점이 ‘알바’까지 고용해 술을 나를 정도로 수입이 꽤 쏠쏠하단 얘기다.
백화암 등산로는 평이하기 때문에 하산하는 데 부담이 적다. 다 내려오면 순댓국집이 서너군데 있는데 맛있기로 소문이 나있다. 양주시청으로 하산하면 다소 지루하다. 하지만 그곳에선 걸어서 양주역까지 갈 수 있다.
엄주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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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곡산(佛谷山) ]
불곡산은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높이 469m의 산으로 불국산으로도 불렸다. 대동여지도는 ‘양주의 진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산 중턱에는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백화암이 있다. 양주 목사가 4백여 년간 행정을 펴던 동헌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2호인 어사대비, 양주향교(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호), 양주별산대놀이(무형문화재 제2호) 전수회관, 양주 목사가 휴식을 취하던 금화정, 경기도 기념물 제143호인 양주산성 등의 문화재가 있다.
[불곡산 등산코스]
<1 코스//4시간>
유양 초등학교 앞 정류장 - 백화암입구 - 백화암 - 십자고개 - 정상(상봉) - 상투봉 - 쉼터 - 임꺽정봉 - 계곡 - 부흥사 - 불곡산장 - 샘내정류장
<2 코스//3시간>
대교아파트 앞 - 샘터 - 능선갈림길 - 암봉 - 임꺽정봉 - 쉼터 - 상투봉 - 상봉 - 십자고개 - 백화암 -백화암입구 350번 도로
<3 코스//4시간>
양주시청 - 245봉 - 295봉 - 송전탑 - 십자고개 - 불곡산정상(상봉) - 상투봉(440m) - 420봉 - 임꺽정봉(446m) - 암봉 - 삼거리 - 샘터 - 대교아파트앞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