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주는 글을 쓸 시간도 부족한데 .....
글쓴 사람은 재클린 오나시스와 하루도 가까이 생활해보지 않았을 것이고, 스님과도 하루도 같이 생활해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그들 각각의 병적 상태에 대하여도 알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남을 칭찬하고 남을 기리는 일을 하면 좋을텐데, 왜 폄하하는 일로 수고를 할까.
우린 오드리헵번의 말년 봉사생활, 테레사수녀님의 봉사활동에 관한 글을 보며 감동한다.
감동을 주는 글을 쓸 시간도 부족한데 .....
"묻노니 자네는 누구인가?"라는, 글 끝 글쓴이가 첨부한 첨부음악 제목이 자꾸만 눈길을 끈다.
---------[ 받은 메일 내용 ]----------
제목 : 우리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날짜 : 2010년 10월 18일 월요일, 09시 42분 03초 +0900
보낸이 :"한신동우회 운영자" <yjk6045@hanmail.net>
받는이 :
우리들의 삶을 바라보면서~~~누구의 죽음이 무소유 정신에 가까웠나
癌이란 현재로선 어떠한 醫術로서도 치료 불가능한 자연의 절대 부름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財産家와 生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들은 방사선 치료를 받는 등 거액의 진료비를 들여가며 起死回生을 企圖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죽음을 맞곤 한다.
특히 肺癌 선고 이후의 치료란 사실상 무의미한 목숨 연장책에 불과할 뿐이어서 지혜로운 자라면 殘命에 대하여 일찌감치 미련을 접는 법이다. 하물며 자신의 삶을 無所有 정신으로
다잡아온 修道者라면 죽음에 임하는 자세가 일반인들과는 달라도 많이 달라야 하리란 생각이다.
재클린 여사를 기억할 것이다. 한 때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었고 再嫁하여 大富豪 오나시스의 아내가 된, 어떻게 보면 인간이 채울 수 있는 욕심이란 욕심은 다 채웠던, 그러니까 무소유적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재클린 오나시스 말이다.
그러한 그녀도 암 선고를 받자 더 이상의 진료를 거부하고 겸허하게 죽음을 기다렸다고 하지 않은가.... 자기로 인해 누구의 수고도 원치 않는다는 말과 함께... 담담한 마음으로 죽음을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에 비해 한 평생 무소유 정신을 노래하며 대중들을 향해 집착과 미련을 버리라고 설파했던 法頂스님은 어떠했나?
3, 4년 전 폐암 선고 이후 가장 좋은 환경인 제주도에서의 요양생활에 이어 국내 최첨단의료시설을 갖춘 삼성병원 병실에 이르기까지 암 치료를 위해 현대의학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은 다 강구한 그였지만 결국엔 그도 죽어갔다.
얘기가 이쯤 되고 보면 俗人 재클린과 修道僧 法頂..... 두 사람 중 과연 누구의 죽음이 무소유 정신에 가까웠다 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葬禮儀式을 하지 말라, 棺을 쓰지 말라, 舍利를 찾지 말라, 내 이름으로 된 물건이 있다면 모두 좋은 곳에다 쓰라....' 法頂의 이와 같은 遺言은 무소유정신의 Episode는 될 수 있을지언정 本領은 아닐 것이다. 무소유정신의 근간이란 두말할 나위 없이 더 이상의 무의미한 삶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홀연히 떠나는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죽음에 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이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법정의 無所有가 과연 그의 삶을 꿰뚫은 진정한 信仰이자 行動綱領이었을지... 혹시 그는 Populist가 아니었을지 하는 석연치 않은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산사의 명상음악(2집)
묻노니 자네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