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만 마음 따라 색도 되고 공도 되어 법계에 두루하니

큰산happypapa 2011. 4. 22. 15:57

 

 

 

 

.......... 깨치고 보면 전 존재가 한 덩어리의 법계연기이기에 개개인이 모두 각체일 뿐만 아니라 전 우주 또한 그대로 각체이다. 여실공경(如實空鏡)과 법출리경(法出離鏡)은 이러한 각체의 공적(空寂)이면서 일체법인 실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유도 무도 아닌 중도(中道)이므로 공적함은 생하고 소멸함이 없으나 일체법에는 생멸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상반되는 각체의 두 모습이 동일하다고 하는 것일까? 두 각체, 즉 여실공경과 법출리경은 언어로 분석하고 분별 사유함에 의해서 나누어진 것이니, 말과 생각에 근거하지 않고 관지(觀智)로써 하나로 꿰뚫어 보아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

  모든 법의 생하고 사라짐, 곧 변화는 마음인 각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자체의 자성인 것이다. 이것을 『화엄경』에서는


  “華嚴經云 知一切法 卽心自性 成就慧身 不由他悟.

   일체 모든 법 자체가 마음의 자성이라는 사실을 알면 지혜의 몸을 성취하니, 이것은 다른 사람의 깨달음이 아니다”


라고 하였으니, 곧 이것으로서 일체 모든 것이 마음의 성품인 각체이며 일체 모든 곳에 두루한다는 사실을 알 일이다.

  마음 성품인 일체법은 각체이니 공(空)하여 무성(無性)이기 때문에 법이 생(生)해도 무생(無生)의 생(生)이요, 멸(滅)도 무멸(無滅)의 멸(滅)이다. 다만 마음 따라 색도 되고 공도 되어 법계에 두루하니, 일체 법을 생사(生死)로 보는 것은 업(業)을 따라 나타난 것이요, 생사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은 관(觀)으로 통찰함에 의해 나타나는 것으로, 이렇듯 감춰지고 드러남은 비록 다르다 해도 근본자리인 하나의 성품인 각체(覺體)는 한번도 그 자리에서 움직인 적이 없다.

인훈습경(因熏習鏡)과 연훈습경(緣熏習鏡)은 일체 모든 법[존재]이 인과 연으로 생긴다. 이는 여실공경과 법출리경의 다른 표현이다. 즉 인연으로 서로 훈습(熏習)한다는 의미이니,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근거는 자성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일체법은 연(緣)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일체법이 스스로 존재한다면 구태여 연(緣, 조건)을 기다려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을 기다려 생겨나는 고로 스스로 바탕이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하건대, 법출리경의 일체법은 결정된 스스로의 성품이 없어서 연기(緣起) 자체이며 이것이 여실공경인 각체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인훈습경과 연훈습경은 영향을 주면서 영향을 받는 것이다. 즉 본각자체[覺體]가 허공과 같이 비어 있으나[因熏習鏡], 중생의 고난을 만나면 중생 자신의 업장(業障)을 없애는 훌륭한 조건인[緣熏習鏡] 원인 역할을 한다. 향 연기가 허공에서 사라지듯이 중생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정각(正覺)을 이룬 쪽에서 중생에게 고(苦)를 자각하여 벗어나게 하려고 영향을 주는 것은 연훈습경이요, 영향을 받아 고(苦)에 대한 자각과 벗어나려는 마음인 중생의 입장에서는 인훈습경이 된다. 즉 일체가 법의 모습으로 연이 되어 영향을 주는 쪽은 연훈습경이요 영향을 받아 법을 깨치는 쪽은 인훈습경이다.

  누구에게나 각체가 있으므로 개개인이 영향을 주기도하고 받기도 하므로 서로가 인이 되는 동시에 연이 된다. 그래서 인간세계는 인과 연의 훈습경(熏習鏡)으로 존재하며, 이 세계뿐 아니라 모든 존재가 각체의 인연으로 존재하는 법계연기인 것이다. 말하자면 인식주관과 인식대상 모두가 무상(無相)의 상(相)이므로 거듭 거듭 다함이 없는[重重無盡]의 법계가 그대로 인과 연의 훈습경인 깨달음의 본체[覺體]가 아닐 수 없다.

 『열반경』에서 ‘불성(佛性)을 보려면 시절인연(時節因緣)을 관하라’라고 말한 시절인연은 법계연기의 각체의 두 모습과 다르지 않다.    .........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