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묵 “옳다고 생각하면 지금 해야 합니다”
문화일보 20120731_29
美횡단 40일 휠체어 대장정 종료 앞두고 뉴욕방문
사고지역 방문…접근성 연구기관과 협력방안 모색
"내년에 학생들과 지질 공부하러 다시 오겠다"
"(6년 전) 사고를 당했을 때 죽는 꿈을 꿨습니다. 그 전에는 열심히 공부만 하면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후 생각이 바뀌었어요.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50)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30일(현지시간) 오후 전동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6월27일 로스앤젤레스(LA)에 도착해 40일간의 미국 횡단 여행에 나선지 33일 만이다. 건강한 표정에 목소리도 맑았다. 소매를 걷으니 태양에 그을린 피부가 약간 벗겨져 있었다.
지난해 1월 호흡 곤란으로 사경을 헤매기도 했던 이 교수가 건강에 무리가 될 수도 있다는 주변 염려에도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못한다'(Now or Never)는 주제를 내걸고 미 대륙 횡단에 도전한 것은 몇가지 숙원을 죽기 전에 반드시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작용했다.
"죽음을 체험하면서 옳다고 생각하면 지금 해야지 나중에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Now or Never'라는 인생 철학도 생겼어요. 사실 횡단에 나서기 전 중요한 과제발표가 있었고 내가 연구책임자였습니다. 예전같으면 그냥 했을 텐데 20분 발표하려고 한달 준비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교수는 2006년 여름 제자들과 미국 서부의 지질환경 탐사 여행을 하던 중 차가 전복되면서 목 아래 부분이 마비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후 LA의 특수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첨단 보조기술을 바탕으로 사회생활을 재개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덕분에 중증 장애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교수로 복직할 수 있었다.
사고 6년째인 올해 이 교수는 무엇보다 사고 지역을 직접 방문해 당시 운명을 달리한 제자를 추모하고, 죽음에 이를 뻔한 자신을 신속한 조치로 살려내고 첨단 재활 기술들과 맞춤 보조기기들을 제공한 병원 측에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세계적인 접근성 연구기관을 방문해 협력 방안을 강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등 다국적 대기업들과 접근성 강화 협력안을 협의하며, 중증 장애에도 낚시ㆍ사냥ㆍ캠핑 등 다양한 레저를 즐기는 미국 장애인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것도 더 늦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과업이었다.
횡단 과정에 방문하는 요세미티와 옐로스톤 등 특이 지질현장에 대한 지질학적 연구 역시 사고 당시만 해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숙원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장애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 먹은대로 시도하기 어려운 것이 특히 중증 장애인들의 삶입니다."
이 교수는 이번 횡단을 통해 그립던 바다를 사고 이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던 것도 큰 기쁨 중의 하나였다며 "미국의 첨단 보조공학 시설들과 시스템은 물론 세계적인 석학들과도 만나서 향후 협력을 위한 충분한 의견 교환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장애 극복의 책임을 장애인이 속한 가정이나 개인에게만 지우는 것보다는 장애 극복이 사회 공동과제라는 공감 확산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여행 경험을 통한 배움을 정책 제안으로 노력할 것이며 가능하다면 책을 펴내서 넓게 공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태평양을 건넌 이후 한달여 동안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 시카고, 피츠버그, 워싱턴 D.C. 등을 거쳤다. 순천향대 정봉근 교수가 동행하는 그의 미국 횡단 대장정은 보스턴에서 마무리된다.
"그랜드캐니언에는 2억년 동안 쌓인 퇴적암이 수직으로 쌓여 있어 나같은 사람은 보기 힘들지만 와이오밍(옐로스톤)에는 지층이 옆으로 누워 있습니다. 길을 따라 수평으로 이동하면서 시간의 흐름대로 공부를 할 수 있죠. 그래서 내년에는 학생들과 함께 지질 공부하러 가볼까 생각 중이예요."
또 다른 도전 계획을 밝히는 이 교수의 표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이 살짝 묻어났다.
이 교수의 미국 횡단기는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accesstrip)와 트위터(https://twitter.com/sang_mook)을 통해서도 함께 할 수 있다.
(뉴욕=연합뉴스)
http://news.donga.com/Inter/New/3/02/20120731/48205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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