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心 왜곡한 ‘모바일 투표’의 퇴장[포럼]
문화일보 20130228_39
신율/명지대 사회과학대 교수·정치학
세상에서 가장 느린 동물은 나무늘보라고 한다. 나무늘보는 시속 900m로 움직이는데 후각은 발달했지만 청각은 아주 둔한 편이라고 한다. 요새 민주통합당을 보면 바로 이런 나무늘보와 아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진통 끝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모바일 투표를 폐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해 보면 시속 900m인 나무늘보보다 더 느리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바일 투표가 문제가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당대표 경선에서부터 시작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도 여러 의문과 문제 제기가 있었다. 먼저, 모바일 투표는 비밀선거와 직접선거 및 보통선거의 원칙이 지켜졌는지 도무지 확인할 수가 없는 시스템이다. 모바일로 투표하게 되면 투표자가 직접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를 빌려서 그 사람 대신 투표하는 건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여서 토론한 다음 집단적으로 투표를 한다 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직접선거와 비밀선거의 원칙이 훼손돼도 이를 막거나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나라 휴대전화 보급률이 100%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단 한 명이라도 휴대전화가 없어 투표를 하지 못한다면 이는 보통선거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원칙에 관한 문제라면 실제적 문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인의 휴대전화를 빌려 선거인단 등록을 하고 선거 당일 상대의 휴대전화를 빌려 대리투표하는 경우를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이 다른 지인들을 동원하기도 훨씬 쉬운 것이 바로 모바일 투표다. 과거에는 사람을 동원하려면 버스를 대절하고 점심 대접을 하며 심지어 돈봉투까지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모바일 투표는 친한 사람들에게 부탁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 팬클럽과 같은 동원 체계만 있다면 얼마든지 회원들을 동원해서 선거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
실제 당대표 경선에서도 당심(黨心)과 ‘모바일심’이 상당한 차이를 보였으며 그 차이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 대선후보 경선에서 현장 투표나 당심에서는 손학규 후보가 이겼지만 모바일 투표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으로 이겼다. 이 정도라면 대선 본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상대도 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박 후보의 승리였다.
역사는 물론 되돌릴 수 없는 것이지만 민주당이 대선에서 진심으로 승리하길 원했다면 진작에 모바일 투표가 민심을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주목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그러지 못한 이유는 친노(親盧)들의 패권주의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자신들이 당권을 잡는 것이 우선이고 자신들의 후보가 대선후보가 돼야 하는 것이 대권 승리보다 우선했다는 말이다.
이제야 겨우 모바일 투표를 배제한다고 하지만 때는 너무 늦은 것 같다. 더구나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가지고 아직도 고집을 부리고 있는 민주당을 보면 나무늘보가 청력이 약하다는 특성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도대체 지금 국민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국민의 목소리가 어떤지에 대해 너무나 무감각한 것 같기 때문이다. 더구나 친노 패권주의가 지배해서 사사건건 자신들의 주도권만을 주장하는 행태가 계속된다면 민주당의 앞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모바일 투표의 폐지가 친노 패권주의를 사라지게 하는 첫 단추이기를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은 이제라도 국민의 생각과 바람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22801033937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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