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읽을거리

빛나는 문화, 정의로운 문화

큰산happypapa 2013. 10. 8. 20:09
제 674 호
빛나는 문화, 정의로운 문화
김 정 남 (언론인)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의 일원으로 강화도에 상륙했던 앙리 쥐베르의 기록은 “강화도에는 가난해 보이는 집에도 책을 가득 쌓아놓고 있어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어디 강화도뿐이랴. 개화기 조선을 기행한 어떤 외국인은 조선의 웬만한 집에는 품격 높은 서화 한두 점씩은 걸려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 겨레는 과연 문화를 아는 자존심 강한 민족이었다.

  1993년 9월 15일, 나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달랑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 한 권을 반환하는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 고속철 차량을 한국에 팔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 의궤를 한장 한장 들춰보았던 그 감격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프랑스가 약탈해간 2백 97권에 달하는 외규장각 도서가 5년마다 갱신되는 대여방식으로 한국에 귀환한 것은 훨씬 뒤인 2011년이었다. 실로 145년 만의 일이다.

  우여와 곡절은 있지만, 해외로 불법반출되었던 우리 문화재는 이렇게 속속 돌아오고 있다. 구한말 호조태환권(戶曹兌換券) 인쇄원판이 2013년 9월 3일, 62년 만에 환수되었다. 호조태환권은 1892년 고종이 화폐개혁을 단행할 때 구화폐의 회수를 위해 발행한 일종의 교환표로 그 원판은 최초의 근대지폐를 대한제국에서 인쇄했던 역사적 유물이다. 이것이 6.25한국전쟁 때 미군에 의해 미국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한∙미 사법공조수사를 통해 돌아오게 된 것이다.

  역시 6.25한국전쟁 당시 미군 병사가 종묘에서 훔쳐가 지금은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박물관에 있는 문정왕후(중종의 둘째 왕비이자 명종의 어머니) 어보도 곧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식적으로 환수된 해외문화재는 131건, 9,756점에 이른다. 그 가운데는 국보가 4점, 보물이 18점이나 된다. 아직도 해외에 남아있는 우리 문화재는 약 15만 3천점, 일본에만 6만 7천점이 있다.

그래도 우리는 정도를 걸어야

  이러한 와중에 아주 공교로운 사건이 발생하였다. 2012년 10월, 한국인 문화재 절도단이 일본 나가사키현(縣) 쓰시마시(市)의 가이진(海神) 신사 지붕을 뚫고 들어가 통일신라시대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을, 인근 관음사에서 관음보살좌상을 훔쳐낸 것이다. 관음보살좌상과 금동여래입상은 부산세관을 무사히 통과, 한국으로 흘러들어왔다. 경찰의 추적으로 범인의 다수는 붙잡혔고, 두 개의 불상은 압수되어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관 중이다.

  이 가운데 특히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묶은 상투, 미소 띤 아름다운 얼굴, 단아한 체구,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 등이 뛰어난 걸작품으로 국보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복장에서 나온 조성기가 있어 조성연대(고려 충숙왕 17년, 1330년), 조성사찰(충남 부석사), 조성목적(부석사 관음전 주존불) 등이 밝혀져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당연히 이 불상은 금동여래입상과 함께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 보존되고 있었다.

  부석사 측이 “14세기에 한국에서 조성돼 부석사에 봉안돼 있던 것을 당시 창궐하던 왜구가 약탈해 간 것”으로 주장하는 데 반해 일본의 관음사 측은 “조선시대 불교탄압 과정에서 일본으로 가져온 것”이라며 즉각 반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쪽이나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불상이 ‘장물’로 국내에서 발견되었을 당시 정부는 문화재 보호법과 불법반출을 불허하고 있는 유네스코 협약을 들어 그러한 문화재는 즉시 원래의 국가로 반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부석사 측은 정부를 상대로 ‘불상점유이전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금동관음보살좌상을 소장했던 일본 측이 이를 합법적으로 취득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때까지 반환할 필요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9월 27일, 광주에서 있었던 한∙일 문화장관 회담에서 유진룡 장관은 일단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도난∙약탈 문화재는 반환해야 한다”는 국제규약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원칙론을 피력했다고 한다. 이러한 언급을 놓고 일본에서는 ‘돌려주기로 했다’고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고, 국내에서는 질타와 비난이 일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유진룡 장관의 견해는 만 번 옳다. 먼저 돌려주고 나서, 만약 일본 측이 이 불상을 불법적으로 강탈해간 것이 확인된다면 그때 당당하게 돌려받아도 늦지 않다. 다른 사람의 눈에 우리 스스로가 정의롭게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감히 정의를 말할 수 없다. 돌려받을 문화재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우리가 정의롭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것들을 회수해 올 것인가.

  백범의 말이 새삼 생각난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높고 빛나는 문화는 정의로 밑받침되는 것이어야 한다. 남에게 빼앗긴 아픔을 겪었으니 우리만은 남의 것을 빼앗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이 사람을 보라 -어둠의 시대를 밝힌 사람들-』


다산포럼
은 일부 지역신문에 동시게재합니다.


컬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다산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이 글에 대한 의견을 주실 분은 dasanforum@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다산연구소 홈 리뷰보내기
* 오늘 현재 이 글을 받아 보시는 회원은 [362,308] 분 입니다.
* 소중한 분께 [추천]하시면 이 글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신청하기
삼우이엠씨 농협
Copyright (c) 2004 www.edasan.org all rights reserved ■ 수신을 원하지 않으시면 [수신거부]를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