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2&야생화

고산증

큰산happypapa 2015. 12. 21. 21:01

남미여행기 9 - 뒷다리 거는 고산증
프로가 만드는 기술신문 = PE News
2015년 12월 07일


저녁 9시가 넘어 페루 리마 공항에 도착했다. 
상공에서 바라본 리마 시가지는 크리스마스 장식용 꼬마전구를 운동장에 널어놓은 듯하다. 
나에게 페루는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잉카문명이 남미에 있다는 것은 알지만, 페루에 있다는 것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았다.
리마에서 1시간 거리에는 옛 잉카의 수도인 태양의 도시 쿠스코가 있다.

쿠스코는 탑승하자 하강이랄 것도 없이 착륙하는 3,400m 고원이다. 
황량한 산으로 둘러싸인 펑퍼짐한 분지 위에 인구 20만이 거주하는 꽤 큰 도시다.
빙 둘러싼 산에는 근대에 들어 호주에서 들여와 심은 유칼리툽스(Eucalyptus, 유칼리)나무가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는 길은 겨우 마을버스가 다닐 정도로 좁은 골목길이다.

이렇게 황량한 곳에 왜 잉카인들은 수도로 삼고 문명을 일으켰을까?
아르마스 광장 중앙 분수대에는 잉카 9대 군주인 ‘파차쿠텍’ 동상이 있다.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정치를 얘기하고 그들만의 삶을 노래했을 것이다.
아르마스 광장을 가로질러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돌담 축대가 반듯하게 쌓여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 티코가 잽싸게 오간다.


 “고산증약은 드셨죠?”
어제 밤 리마에 도착할 때 8시간 전에 고산증약을 먹어야 한다는 멘트가 떠오른다.
고산증이 어떤 증세인지는 모르지만 약을 먹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고산증 처방은 비아그라라고 한다. 
물론 페루에서 판매하는 소로치필(Sorojchi pills)이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여행 준비를 아내에게 맡겼기에 비아그라를 어디서 어떻게 구입했는지 궁금했다. 
비아그라라고 하며 음란한 생각이 떠오르고 친구들끼리 킥킥거렸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비아그라 어디서 샀어?” 
”병원에서 처방을 해주던데!”
무덤덤한 표정이다.

뒷짐 지고, 가능하면 천천히 걸으세요! 
가이드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몇 발자국 걸으니 갑자기 숨이 차고 답답해진다. 
‘이것이 고산증인가?’
골목길 돌담은 돌의 형상에 따라 정교하게 짜 맞추어 마치 강력한 접착제로 붙여놓은 듯하다. 
신라 시대에 축조한 불국사의 축대를 보면 돌과 돌의 아귀를 맞춘 흔적이 곳곳에 있는데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옛날 사람들의 생각은 도찐개찐이 아니었을까 싶다.

차츰 온몸이 나른해지며 몸살 기운까지 몰려온다.
일행들이 하나둘 처지기 시작하고 말수가 줄어든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힘든데 경사진 곳에 있는 겐코(미로)로 안내한다.
불과 500m 내외인 거리인데도 이젠 하반신 뒤쪽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이과주의 사비에르 슈트 호텔에서 묵던 날, 산소가 많은 곳이라고 유난히 강조하던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녹초가 된 상태에서 잉카인들의 요새라 불리는 삭사이만 요새에 도착했다.
요새는 톱날처럼 굴곡진 모양으로 돌 축대를 쌓아 몸을 숨길 수 있게 되어있었다.
거대한 돌덩이를 어디서 가져와 어떻게 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를 주 적으로 삼고 이렇게 높은 곳에 요새를 만들었을까? 
혹시 고고학자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잉카의 목욕탕이라 부르는 탐보마차이를 지나 우루밤바 숙소로 향했다. 
우루밤바는 성스러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우루밤바 강가에 이루어진 작은 도시다.
이미 내 몸은 기분이 나쁠 만큼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고 아내 또한 견디기 힘들어하는 얼굴이다.
뒤늦게 비아그라를 먹었지만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우르밤바 Agustos 호텔은 해발 2,800m에 있어 쿠스코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고산증은 가시지 않는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전기난로를 켜놓고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한기가 들고 만사가 귀찮아 잠시 누워있자니 저녁 식사 전화가 걸려온다. 
식사를 포기하려 했으나 개별식사가 아니고 단체식사란다.
빵 몇 조각 먹는 둥 마는 둥 숙소로 돌아와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웠다. 
여름이건만 한겨울처럼 기온이 뚝 떨어져 전기난로는 있으나 마나다.

전기난로가 더워지기를 기다렸으나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정전이 되고 만다. 
밖에서는 요란한 빗소리가 번개와 함께 교대로 장단을 맞춘다.
잠이 들었는가 싶으면 개꿈을 꾸고, 결국 숨이 답답하여 잠이 깨기를 반복하였다.
일제 관동군 731부대가 만주에서 생체실험했을 때 죽어간 그 당사자들의 고통은 어땠을까?
손톱 뿌리 반달모양은 이미 푸르스름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튿날 아침 아내와 일행 몇 사람은 결국 산소마스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결국, 나는 고산증을 피해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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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여행기 10 - 공중도시 마추픽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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