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일사일언] "오빠, 그거 걸레 아냐?"

큰산happypapa 2010. 7. 30. 10:47

[일사일언] "오빠, 그거 걸레 아냐?"

몇 년 전 여자친구와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나와 여자친구는 각자 수건 하나씩을 준비했는데, 내가 갖고 온 수건을 보고 여자친구가 말했다. "오빠, 그거 걸레 아냐?" 멋쩍게 웃으며 "잘못 갖고 왔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건 집에서 쓰던 수건이었다. 닳고 닳아 얇았던 우리 집 수건과 달리 여자친구의 수건은 호텔에나 있을 법한, 보풀이 풍성하고 색도 선명한 새 수건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욕실의 수건들을 확인하니 대부분의 수건에는 세월을 짐작할 만한 흔적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1998년 4월 5일 서산향우회 단합대회 기념' '축! 1995년 2월 21일 이아름 첫돌' 같은 문구들이었다. 여자친구의 말을 돌이켜 생각하니 나를 비웃었던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어머니에게 장롱 속에 있는, 선물 받은 새 수건을 꺼내 쓰자고 이야기했다가 보기 좋게 묵살당했다. 이유는 아직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늘 또래 친구들에 비해 용돈이 풍족했다. 중학교 때에는 반에서 유일하게 컴퓨터를 갖고 있었고, 자전거나 시디플레이어 같은 것도 부모님에게 며칠 조르면 쉽게 가질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날들 속에서 우리집은 부잣집이었다.

얼마 전 아버지가 고모부와 함께 만원짜리 여행을 다녀오셨다.
목포 쪽 어디를 점심 포함해서 단돈 만원에 다녀올 수 있다기에 가셨는데 알고 보니 필요 없는 물건을 잔뜩 사야 하는 사기였다는 것이다. 그날 밤 세수를 하고 물기를 닦다가 글자가 거의 다 지워져버린 수건을 발견했다. 어쩌면 부모님은 단 하루도 부자로 사셨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