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2&야생화

<산길을 걸으며> 공룡능선 지나 너덜겅(백두대간 한계령~미시령)

큰산happypapa 2010. 11. 12. 14:50

 

<산길을 걸으며> 공룡능선 지나 너덜겅(백두대간 한계령~미시령)

20101111 건설경제

 

김호영 본지 어문연구소 소장

 지리산에서 북진하는 남한 백두대간 산행의 결정판이다. 약 24㎞ 거리지만 암릉이 많은 설악산을 남북으로 종주하기 때문이며 마지막 남은 다음 구간은 약 15㎞ 거리로 짧은 탓이다. 사실 한계령에서 미시령까지는 이번이 처음이다. 저항령 황철봉 구간과 공룡능선을 몇 번씩 아래위로 다니긴 했지만 설악동이나 백담 쪽으로 빠진 까닭이다.

 몇 년 전 초겨울 대간 산행을 시작한 것이 바로 이 구간 남진이었다. 40명 넘는 산행팀 대부분이 경험이 많지 않은 데다 눈이 살짝 덮인 너덜지대를 어둠 속에서 설설 기다시피 했다. 결국 나는 공룡능선은 통과했지만 설악동까지 19시간이 걸렸다. 한계령까지 간 산벗은 열명 미만이고 절반 이상이 마등령에서 내려갔다. 근 한 달간 계단 내려가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때에 비해 날씨가 포근한 덕이겠으나 만 3일 지난 지금 아프던 다리가 거의 회복됐으니 발전했다고 해야 할까.

 대청봉(大靑峰, 1708m)에는 여전히 사람 많고 바람이 거셌다. 7시가 안 된 시각, 일출은 못 본 채 중청 소청 지나는 길 대신에 죽음의계곡 옆 능선으로 들어간다. 초반부터 금지된 산길을 택한 것이다. 여름철 종주산행에서 잔가지들이 가로막는 길을 지나기 일쑤인데 여기서는 아예 굵은 나뭇가지들이 산객의 온몸을 부여잡는다. 잠시 헤매기도 했지만 중청 쪽으로 간 이들보다 더 늦게 희운각휴게소에 도착했다. 걸릴까봐 화장실 뒤편으로.

 공룡능선(恐龍稜線).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장쾌한 모습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무너미고개에서 마등령삼거리까지 약 8㎞에 이르는 암릉길로 오른쪽 동쪽으로 외설악, 서쪽으로 내설악을 구분짓는 설악의 대표적 능선이다.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이기도 하다. 몇 년 전 길을 다듬어놔서 한결 낫다. 남진할 때 스틱을 던져놓고 밧줄 잡곤 했는데 요즘은 그럴 일이 없다. 암벽등반지로 유명한 천화대(天花臺)나 그 뒤로 천불동(千佛洞)계곡이 오른쪽이요, 왼편으로는 용아장성(龍牙長城)이다. 자연이 빚어낸 암릉 하나하나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예술작품이 쫓아가지 못할 그야말로 천의무봉이다.

 희운각에서 아침을 먹었지만 마등령에서 간식을 핑계삼아 잠시 휴식이다. 공룡을 지나 거리상으로는 절반을 넘었어도 너덜길이 기다리니 긴장을 아니할 수 없다. 다시 출입금지구역이다. 국토를 사랑하고 자연을 보존하고 싶어하는 백두대간 산행이니 불법행위가 용서되겠지 하는 생각이 아전인수의 변명은 아니리라. 이름 없는 봉우리 서넛 있는 사이로 저항령과 황철봉을 지나야 한다. 저항령(低項嶺)은 6ㆍ25 때 격전지로 알려졌다. 저항령 안부까지 가는 데 암릉을 여럿 넘고 너덜지대도 몇 지난다. 그러나 거기까지 너덜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황철봉(黃鐵峰, 1381m)을 전후해 널린 너덜겅들이 진짜다. 남한 최대일 듯하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바위들이 무질서하게 깔린 거리가 100m 넘을 것 같다. 그런 곳이 황철봉 앞뒤로 다섯 군데던가. 표지판은 전혀 없고 바위에 가끔씩 표시된 붉은색 화살표 또는 줄을 매놓은 걸 쫓아가야 한다. 어느 산객은 황철봉 너덜지대가 설악에서 에너지 파동이 가장 센 곳이요, 태곳적 숨을 쉬는 대지의 기운을 잘 받을 수 있으리라 했지만 열서너 시간 무박산행을 한 처지에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