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파워의 진수를 선보인 행사였습니다. 350년 만에 평민출신 왕자비가 버킹엄 궁에 들어왔다는 것에서부터 신랑 신부가 탄 110년 된 마차, 하객들이 입은 옷가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화제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는 윌리엄 왕자가 결혼 예복으로 입은 검정색 하의와 빨간색 상의로 된 ‘아이리시 가드’ 보병연대의 명예대령 복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버킹엄 궁의 근위병들이 입는 옷으로 런던의 관광명물이자 세계인에게 친숙한 복장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가했다 최근 귀국한 이 부대의 헌신에 경의를 표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 오는 17~20일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일랜드 방문을 앞두고 양국의 우호증진의 상징으로 아일랜드 근위대복장을 택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그럴 듯합니다. 영국 왕이 아일랜드를 방문하기는 100년 만이라고 합니다.
공군 헬기조종사 출신의 윌리엄 왕자가 육군 복장을 입었다 해서 공군 쪽에서는 남색 공군 복장을 알릴 기회를 잃어 서운함을 표시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1981년 찰스 왕세자의 결혼식 때에도 공군 조종사 출신의 신랑은 해군 정복을 입었고 이번 아들의 결혼식때는 군제독의 복장 차림이었습니다. 영국 왕실에선 왕자들의 결혼예복이 군복인 것을 알게 됩니다. 군복은 사병의 옷이든, 장교의 옷이든, 장군의 옷이든 멋과 품위가 있는 옷입니다. 휴가 나온 아들의 군복차림에서 모든 부모들이 느끼는 감정도 그것일 겁니다.
영국 사람들은 거기에 하나를 더해 군복을 가장 명예로운 복장으로 여기는 전통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를 수호하는 성스러운 임무를 상징하는 복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국은 전시와 같은 위급 시에는 징병제를 실시하지만 평시에는 모병제의 나라입니다. 누구든 군에 가기싫으면 안 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왕실의 경우는 다릅니다. 항상 지켜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왕자 중에 한 명이상은 현역으로 복무 중이어야 한다는 원칙도 있다고 합니다. 군에 안 간 왕자는 아마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슨 결함이 있는 것으로 간주돼 왕이 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왕자는 그냥 군대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현장으로 뛰어듭니다. 윌리엄의 동생 해리 왕자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전투가 가장 치열한 헬만드 지역의 영국군에 배속됐습니다.
그의 파병 사실이 알려져 탈레반이 납치 및 살해계획을 세웠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귀국조치 됐습니다.
2008년 3월 복무기간 4개월을 못 채우고 파병 10주 만에 조기 귀국했을 때 그는 “너무 수치스럽다. 전장의 병사들이 영웅이지 나는 절대 영웅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윌리엄 왕자도 공군소속이어서 전쟁에 참가하지 못한 것을 수치로 여겼다고 합니다.
찰스 왕세자의 동생 앤드류 왕자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 해군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습니다. 그는 해군에서 22년을 복무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 필립 공은 2차세계대전 때 전투함의 함장이었고, 엘리자베스 여왕도 공주의 신분임에도 운전병 으로 참전한 여군이었습니다. 이들에게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의 전형을 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공직선거나 공직임명 때마다 터져 나오는 것이 병역기피이고, 위장전입 시비입니다. 이제 그 중 하나만이라도 확실하게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병역을 기피한 사람은 스스로 공직을 맡으려 하지말고, 맡겠다고 나서면 유권자가 선택하지 말고, 임명권자는 그런 사람을 쓰지 않는 원칙 말입니다. 내년의 대선총선이 그런 기회가 된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