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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다수결 함정

큰산happypapa 2012. 12. 14. 15:34

 

민주주의의 다수결 함정… 民意 반영 못한다

선거에 숨겨진 수학적 오류

대통령을 위한 수학 / 조지 슈피로 지음, 차백만 옮김 / 살림

문화일보 20121214_27

 

최근 ‘제18대 대통령 당선자에게 선물하고 싶은 첫 책’으로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가 꼽혔다. 월간 ‘라이브러리&리브로’가 100개 출판사의 180명 출판인에게 물어본 결과다. 한 교수는 ‘피로사회’를 통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소진하게 만드는 ‘성과사회’의 폐해를 날카롭게 분석했다. 출판인들이 향후 5년 동안 국정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유에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렇다면 새 대통령을 뽑기에 앞서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이나, 후보 단일화 과정에 문제는 없었을까. 다수결로 대통령을 뽑는 선거엔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이 책 ‘대통령을 위한 수학’은 그런 궁금증을 풀어줄 단초를 제공한다. ‘민주주의 꽃’이라 불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에 숨겨진 수학적 오류를 파헤쳤다. 수학자 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은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절차에 내재된 문제와 위협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자 해석이다”고 말한다.

 

책은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한다. 책에 따르면 플라톤은 일반대중이 통치하는 중우정치를 불신해 민주주의를 싫어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플라톤은 선거과정에서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제한하기 위해 독특한 투표방법을 개발했다. 시민을 4개 소득계층으로 분류한 것. 빈곤층의 입장에선 부유층과 빈곤층의 대표자수가 같으므로 빈곤층의 목소리도 공평하게 대변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을 감안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모든 사회엔 부자보다 가난한 이들이 훨씬 많기에, 실질적으론 빈곤층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더 작아진 것이다. 머리 좋은 플라톤이 수학 원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사례다.

 

책엔 18세기 프랑스 저명한 정치이론가이자 수학자인 장-마리 마르키 드 콩도르세의 이름을 딴 ‘콩도르세의 역설’도 흥미롭게 소개한다. 오늘날까지도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 ‘콩도르세의 역설’은 ‘다수결’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오류를 제시한다. ‘투표의 역설’이라고 불리는 ‘콩도르세의 역설’에서 콩도르세는 셋 이상의 대상을 두고 투표할 경우 그 결과는 투표자들의 진의를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확률적으로 증명했다. 가령, 한 유권자가 A를 B보다 선호하고(A>B), B를 C보다 선호할 경우(B>C), A를 C보다 좋아해야 한다(A>C). 하지만 최다득표제하에서는 이 같은 이행성에 위배되는 결과(C>A)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콩도르세는 사회가 다수결을 수용한 이유는 단지 편의성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다수의 의지에 개인의 의견을 복종시키는 건 사회의 조화와 침묵을 강요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 것.

 

그런가 하면, 197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케네스 애로는 아예 민주주의가 전제로 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는 걸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1951년 대학원 시절에 쓴 ‘사회적 선택과 개인의 가치’라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수결에 따른 의사결정이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밝혔다. 어떤 투표건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없다는, 다시 말해 투표가 사회 전체의 선호를 항상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를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라고 한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문제는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전체 하원 의석은 느는 데 일부 주에서는 줄어드는 ‘앨라배마 역설’ 등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책은 또 프랑스 대통령 선거 제도인 결선투표제의 역설도 지적한다. 수학자들은 콩도르세의 역설을 발견한 이후 투표제도를 연구하고 새로운 방안을 연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과연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까. 저자의 대답은 이렇다. “무엇보다 불행한 점은 선거의 역설과 불일관성, 선거조작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정치방식이 바로 독재라는 것이었다.”

 

미완의 민주주의를 개선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던 수학자들의 역사를 추적하며, ‘선거의 역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일러주는 책은 유권자들에게 한 표의 소중한 가치와 투표의 맹점을 새삼 일깨운다. 이런 맥락에서 책은 ‘대통령을 위한 수학’이라기 보다 ‘유권자를 위한 수학’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121401032730021004